며칠 전 출근길에 재난문자가 떴다. ‘서울 일부 지역 침수 위험’이라는 내용이었는데, 막상 내가 있는 곳은 맑았다. 스마트폰을 보던 동료가 ‘또 챌린지냐’며 웃었다. 최근 SNS에서는 재난문자를 두고 일명 ‘재난문자 챌린지’라는 밈이 돌고 있다. 문자를 받으면 인증샷을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졌는데, 과연 이게 웃고 넘길 일일까? 나는 국안 사이버쪽을 주로 보지만, 가끔 이런 사회 현상도 곱씹어보게 된다. 사실 나도 며칠 전에 ‘서울 동부권 지하철 혼잡 주의’라는 문자를 받고는 ‘이게 재난인가?’ 싶어 동료에게 보여줬더니, 다들 ‘챌린지 성공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문자까지 보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재난문자는 본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통보 수단이다. 행정안전부 재난문자 안내에 따르면, 재난문자는 태풍, 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는 물론 미세먼지, 코로나19 같은 사회재난까지 포함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발송 건수가 급증하면서 ‘도배’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2023년 한 해 동안 발송된 재난문자는 약 1억 2천만 건으로, 하루 평균 33만 건꼴이다. 국민 한 명이 연간 20통 넘게 받는 셈이다. 특히 2024년 상반기에는 더 늘어나서, 내가 사는 지역만 해도 일주일에 3~4통은 기본으로 온다. 어떤 날은 아침 7시에 ‘안개 주의’ 문자가 오고, 오후에는 ‘폭염 주의’, 저녁에는 ‘강풍 주의’까지 하루 세 통을 받은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재난’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과잉 알림이 오히려 경각심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심리학에는 ‘습관화(habituation)’라는 개념이 있다.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반응이 둔해지는 현상인데, 재난문자가 너무 잦으면 진짜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무시할 위험이 있다. 작년 미국 하와이에서 발생한 ‘가짜 탄도미사일 경보’ 사건을 보면, 실제로 많은 사람이 ‘또 장난이겠지’ 하며 무시했다가 큰 혼란이 빚어졌다. 하와이 경보 오발령 사례는 이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22년 포항 지진 당시 일부 시민들이 ‘또 재난문자 챌린지인 줄 알았다’며 대피를 늦췄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지진 발생 2분 후에 발송된 문자를 ‘장난’으로 오인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배경에서 ‘재난문자 챌린지’는 단순한 놀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이 재난문자를 장난감처럼 여기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 사이에서는 문자 내용을 캡처해 짤로 만들거나, ‘오늘은 무슨 문자가 왔나’ 하는 식의 밈이 퍼지고 있다. 물론 나도 가끔 동료와 ‘오늘 재난문자 챌린지 성공했냐’고 농담을 주고받긴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공공 커뮤니케이션의 신뢰성 문제가 숨어 있다. 한 대학생은 인스타그램에 ‘재난문자 챌린지 100일 성공’이라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댓글에는 ‘나도 오늘 왔어’, ‘이거 모으면 뭐 주나’ 등의 반응이 달렸다. 이렇게 놀이화되면 진짜 위급 상황에서도 ‘또 챌린지네’ 하고 넘길 가능성이 크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은 재난문자 발송 기준이 상대적으로 엄격하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긴급 상황에만 발송하고, 일상적인 정보는 별도의 앱이나 라디오로 대체한다. 일본 기상청의 재난정보 체계는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만’이라는 원칙에 기반한다. 반면 한국은 ‘모든 국민에게 모든 정보’를 보내는 경향이 강하다. 이 차이가 단순히 문화의 차이일까, 아니면 시스템의 문제일까? 실제로 일본에 사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재난문자를 받으면 거의 무조건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또 왔네’ 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 차이는 발송 빈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택적 수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위치 기반으로 해당 지역에 실제 위험이 있을 때만 발송하거나, 사용자가 알림 수준을 조정할 수 있는 옵션을 주는 식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재난문자 개선 권고에서도 ‘발송 기준 재정립’과 ‘수신 동의제 도입’이 언급된 바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모든 국민의 알권리’라는 명분과 ‘행정 편의’라는 현실이 충돌한다. 예를 들어, 선택적 수신을 도입하면 ‘왜 나는 이 문자를 못 받았냐’는 민원이 빗발칠 수 있다. 실제로 2023년에 한 지자체가 ‘재난문자 수신 거부’ 서비스를 시범 운영했을 때,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항의가 들어와 중단된 사례가 있다. 이렇듯 알권리와 피로감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재난문자 챌린지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재난문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 문자가 왜 왔을까’ 하고 내용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재난문자를 분석하며 ‘이건 좀 과하다’, ‘이건 진짜 필요한 정보다’ 같은 토론이 벌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시민의 정보 리터러시가 높아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오늘의 재난문자 평가’라는 게시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오는데, 회원들이 ‘이 문자는 발송 기준이 모호하다’, ‘이 문자는 실제로 도움이 됐다’며 의견을 나눈다. 이런 토론이 활성화되면,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발송 주체의 책임이 크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는 단순히 ‘보내고 끝’이 아니라, 문자의 효과성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반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문자를 받은 사람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재난문자 효과성 연구에 따르면, 수신자의 행동 변화를 유도한 문자는 전체의 30% 미만이라는 결과가 있다. 즉, 70% 이상의 문자가 사실상 무용하다는 뜻이다. 예산 낭비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해 재난문자 발송에 들어가는 비용이 수백억 원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효율성 제고가 시급하다.
결국 ‘재난문자 챌린지’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의 과잉과 시민의 피로감이 만든 현상이다. 우리가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문자’와 ‘불필요한 문자’를 구분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도 이 주제를 계속 지켜볼 생각이다. 다음에 또 재난문자가 오면, ‘챌린지’용으로 캡처하기 전에 한 번쯤 ‘이게 정말 필요한 정보일까?’라고 자문해보려 한다.
비교하자면, 과거에는 재난문자가 없었고 대신 TV 자막이나 라디오로 대체했다. 지금은 스마트폰 덕분에 실시간으로 전달되지만, 그만큼 ‘알림 홍수’에 시달린다. 두 방식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옛 방식은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도가 높았지만 전달 속도가 느렸다. 지금 방식은 빠르지만 정확성과 적절성이 떨어질 때가 있다. 이상적인 것은 두 장점을 결합한 ‘스마트 알림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긴급도에 따라 푸시 알림, SMS, 앱 내 알림 등 차등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고려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재난문자는 필요하다. 단,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 발송 기준을 명확히 하고, 수신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며, 효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챌린지’가 유행하는 지금이야말로 제도를 개선할 좋은 기회다. 정부와 국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